5인 미만 사업장 ‘휴일 양극화’ 우려
‘4조원’ 경제 효과만 강조해선 설득력 떨어져
‘연차 더 쓰라’ 하기 전에 기업들도 휴가 쓸 분위기 만들어야
이번 주 직장인들을 가장 들뜨게 만든 건 아마 하반기에 ‘빨간 날’이 4일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뉴스였을 겁니다. 15일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설과 추석, 어린이날에만 적용되는 대체공휴일을 모든 공휴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힌 건데요, 이렇게 되면 올해 주말과 겹치는 광복절과 개천절, 한글날, 크리스마스에 하루씩 대체공휴일이 생기게 됩니다.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아 쉽게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체공휴일 확대 논의는 하루 만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다음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정부가 대체공휴일 확대에 난색을 표한 겁니다. 일단 다음주(22일)에 논의를 계속한다고 하니 아직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일단 광복절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 정부는 왜 제동 걸었나
정부가 여론 눈치를 봤다면 당연히 대체공휴일을 늘리자고 할 겁니다. 실제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티브릿지코퍼레이션에 의뢰해 18세 이상 국민 10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5%가 대체공휴일 확대에 찬성했습니다. ‘더 쉬고 덜 일하자’는 법안이니 아무래도 반대보단 찬성이 많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대체공휴일 확대가 마냥 여론만 따르기에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많습니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 및 경직된 휴가 사용 문화, 노동양극화 등이 얽히고설킨 ‘고차 방정식’인 셈이죠.
정부가 신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영세사업장과 근로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은 유급휴일 대상이 아닙니다. 마냥 대체공휴일을 늘리는 건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대체공휴일을 적용하려면 근로기준법을 손 봐야 하고, 그럴 경우 하루만 쉬어도 손실이 큰 영세사업장에는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공휴일에 문을 열려면 1.5배 가산임금을 지급하는 등 추가 인건비 부담도 생길 테니까요.
● ‘4조 원 경제효과’에서 소외된 사람들
공휴일 확대가 필요하다는 정치권 주장이 인기에 영합한 ‘표퓰리즘’이자, 단기간 내수 진작 효과만을 위한 땜질 처방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노동문제 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전히 주 40시간(법정 근로시간)이 아닌 주 52시간(연장근로 포함)을 기준으로 일하는 직장인이 많고, 과로로 사망하는 근로자도 적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장시간 근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마이너 한 문제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대체공휴일 확대 필요성으로 경제 효과를 강조합니다. 여행객이 늘어나고, 소비를 더 할 테니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입니다. 지난해 광복절 임시공휴일 지정을 앞두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전체 경제 효과 4조2000억 원, 하루 소비지출 2조1000억 원, 3만60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총량으로 표현되는 이런 숫자의 낙수 효과가 모든 국민에게 고루 퍼지는 건 아닙니다. 가동을 멈춘 공장이나 하루치 급여를 날린 일용직 근로자에겐 마이너스 효과일 수도 있습니다. 여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경기와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쓰기 쉬운 카드를 꺼낸 건 아닌지 짚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 수당 받으려고 연차 안 쓴다고요?
쉬는 날을 더 늘리면 안 된다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기업들 주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공휴일은 15일로 다른 나라들보다 오히려 많은 편이다. 대체공휴일을 더 늘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물론 미국(연방 기준 10일), 독일(10일), 프랑스(11일), 호주(12일) 등의 사례를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근로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쉴 수 있느냐는 직장에서 보장받는 연차휴가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 중 상당수는 25~30일의 연차휴가를 보장 받고 거의 다 소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호주 등도 20일 이상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0 근로자 휴가조사’를 찾아봤습니다. 설문에 응답한 5000명의 근로자들은 평균 15일의 연차휴가가 생기지만 실제 사용한 날은 10.9일에 그쳤습니다. 이마저도 2017년 14.5일 발생, 8.5일 사용에 비해선 크게 나아진 결과입니다. 연차휴가 소진율은 72.4%에 그쳤습니다.
기업들은 “연차를 더 쓰면 되지 않느냐” “수당을 받으려고 연차를 안 쓰고선 쉴 권리를 주장한다”고 항변합니다.
같은 설문조사를 보겠습니다. 연차를 사용하지 않는(못하는) 이유에 대해 ‘연차 수당을 받아서’라는 답변이 21.8%로 가장 많은 건 맞습니다. ‘특별한 휴가 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12.6%였습니다. 대략 3명 중 1명은 자발적으로 연차를 덜 썼다고 봐도 되겠지요. 하지만 △대체 인력이 부족해서(15.9%) △업무량 과다(14.4%) △다른 사람과 협업 때문에(9.8%) △작업 일정 때문에 시기를 놓쳐서(7.9%) △상사의 눈치(5.3%) 등 절반 이상(53.3%)은 연차를 쓰기 힘든 직장 환경 때문에 쉴 권리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 ‘경제 효과’ 보단 ‘쉴 권리’ 확대에 초점 맞춰야
주 52시간제 도입 후 근로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2019년 기준 1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입니다. 가장 짧은 덴마크(1380시간)에 비하면 연간 73일(하루 8시간 근무 기준)을 더 일하는 셈이죠. 주당 5일씩 일한다고 봤을 때 14주, 1년에 거의 석 달을 더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1년에 2, 3일에 불과할지라도 근로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체공휴일 확대 법안은 2008년 윤상현 무소속 의원(당시 한나라당)이 처음 발의했습니다. 기업들의 강한 반대를 이겨내고 2014년부터 대체공휴일이 지정됐습니다. 문제는 대체공휴일제 도입 후에도 15일의 공휴일 중 연평균 3일이 주말과 겹치다보니 그 효과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018년엔 69일(일요일 포함), 올해는 64일 등 해마다 공휴일 수 편차도 컸습니다.
내수진작 효과만 앞세운다면 대체공휴일 확대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수혜를 누리지 못하거나 손해를 보는 업종이나 직종도 많기 때문이죠. 대체공휴일 확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모든 근로자들이 차별 없이 ‘빨간 날’을 누릴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등 제도적 보완책 마련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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